새 장관의 조건 (문화일보 2014년 02월 11일(火)
새 장관의 조건
박근혜 대통령은 곧 새 해양수산부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 누구냐도 중요하지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이다. 취임 1년을 맞아 ‘수첩·밀봉’인사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행정 각부의 수장인 장관(長官)은 리더이자 참모의 덕목을 모두 갖춰야 하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위로는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지만 아래로 적게는 수백 명에서 수십만 명의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에서 장관은 권력창출 과정에 공로가 있는 공신(功臣)의 전리품 또는 청와대의 말을 잘 듣는 인사들이 경력 관리를 위해 거쳐가는 자리쯤으로 여겨졌다. 청와대 비서실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다 보니 장관들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실세가 아니면 재임중 대통령을 독대(獨對)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다. 지난해 기초연금 갈등 끝에 퇴임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퇴임하면서 “대통령에게 수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역대 정부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14개월인 것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장관의 존재감이 그만큼 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모든 국무위원(장관)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됐고 지식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장관들의 역할과 책임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조각에서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장·차관급 인사들이 낙마한 것을 보면 예전보다 통과 관문이 까다롭고 어려워졌다. 그만큼 장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고 실제 역할 비중 또한 커졌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장관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한 연설에서 장관과 같은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비전(vision), 확고한 신념(deep conviction), 자신감(self-confidence), 용기(courage), 청렴성(integrity)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예의(decency)를 꼽았다. 정치학자들은 장관들의 유형을 장관이 직접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해 나가는 ‘정책설계형’과 공무원들이 만들어 놓은 정책을 선택만 하는 ‘정책 선택형’, 정책보다는 조직관리만 충실한 ‘조직관리형’, 정치인 출신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형태로 외부 활동에 치중하는 ‘대사(大使)형’ 등으로 구분한다. 앞에 제시한 유형 중 아무것도 못하는 ‘무사안일형’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장관들은 어느 유형에 속할까. 박 대통령만의 독특한 인선관이 있겠지만 일반 통념과 너무 동떨어진 인선의 후과(後果)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최근 해임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례만 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그는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윤 전 장관 자신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 정부 들어 다시 독립한 해수부 공무원들과 산하 3만여 명의 공직자가 받은 자존심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장관을 참모로서 그저 말 잘 듣고 튀지 않는 사람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리더감을 적극 찾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