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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출항하는 국내 첫 쇄빙선 ‘아라온호’ 건조현장 (동아일보 2009.06.06)

수퍼보이 2009. 6. 7. 23:53

■ 12월 출항하는 국내 첫 쇄빙선 ‘아라온호’ 건조현장 가보니

실험연구실에 헬기장까지…만능기능 갖춘 바다의 슈퍼맨


선진국서 공동연구 잇단 제의, 한국 극지연구 위상 급상승


#1. 2003년 12월 7일. 전날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고무보트인 세종2호를 타고 나갔던 대원 3명과 연락이 끊겼다. 남은 5명의 대원은 수색대를 구성해 세종1호를 타고 동료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 이날 오후 8시 50분경 세종1호는 “보트에 이상이 생겼다. 물에 빠졌다…”는 마지막 소식을 전한 뒤 교신이 두절됐다. 세종2호에 탄 대원들과 바다에 빠진 수색대원 중 4명은 구조됐지만 전재규 연구원(당시 27)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남상헌 하계대장(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운영실장)은 “체격도 야리야리한 친구를 그 차가운 물에서 떠나보냈다”며 가슴을 쳤다. 대원들은 “쇄빙선 한 척만 있었어도…” 하며 통곡했다.

#2. 2009년 6월.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는 국내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90% 이상 건조돼 막바지 단장이 한창이었다. 쇄빙선 건조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남 실장은 수시로 이곳을 찾아 뿌듯한 마음으로 아라온호와 만난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재규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라온호를 볼 때마다 너무 고맙고, 또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전 씨와 같은 보트에 탔다가 구조된 정웅식 연구원은 “고인의 희생으로 아라온호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씨의 유해는 2007년 10월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됐다. ‘춥지 않나요? 거긴 항상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잊지 않을게요.’ 전 씨를 추모하는 홈페이지(cafe.daum.net/sejongjaegu)에는 요즘도 간간이 방문객들이 들어와 글을 남긴다. 전 씨의 죽음은 얼음을 깨고 운항할 수 있는 쇄빙선 건조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전부터 쇄빙선을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사고가 난 뒤 쇄빙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자극받아 건조 작업에 더욱 속도를 냈다. 극지 연구의 꿈을 담아 영도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아라온호를 미리 살펴봤다.

○ 선체 앞부분 밑쪽에 ‘아이스 나이프’ 장착

영도조선소 독은 아라온호를 도장하고 프로펠러를 고정시키는 작업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붉은색 선체에 새겨진 흰색의 ‘아라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바다를 뜻하는 옛 우리말 ‘아라’에 모두라는 의미의 ‘온’을 붙인 말로, 모든 바다를 누비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일반 배는 선체 앞부분 아래가 둥글지만 아라온호는 선체 앞부분 밑쪽에 얼음을 자를 수 있는 ‘아이스 나이프’가 장착돼 있다. 한진중공업 임태완 선임설계원은 “선체에 칠하는 도료도 돌덩이처럼 단단해 얼음 조각에 쉽게 긁히지 않는다”며 “섭씨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견딜 수 있어 극지와 적도를 전천후로 누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미에 프로펠러 2개가 있고 배 앞쪽에도 보조 프로펠러 2개가 장착됐다. 후미의 프로펠러는 몸체가 수평 방향으로 360도 회전해 아라온호는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깨진 얼음이 배에 달라붙으면 선체를 흔들어 얼음을 털어낸다. 일반 배는 얼음조각이 그대로 배에 얼어붙어 꼼짝없이 그 자리에 갇히게 된다. 아라온호는 진동이 심한 엔진이 아니라 발전기로 가동되는 전기모터로 움직여 떨림이 적고 조용해 연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자동위치유지장치(DP)를 달아 해류나 바람 등에도 배가 움직이지 않고 특정 위치에 그대로 떠 있을 수 있어 해저 탐사를 하는 데도 유리하다.

각종 실험 장비가 설치된 연구실과 컨테이너를 실을 공간은 물론이고 헬리콥터장과 격납고도 갖췄다. 유리 창문 등 곳곳에 열선을 넣어 혹한에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임 설계원은 “아라온은 얼음을 깨는 것은 기본이고 25t 크레인으로 자체 하역까지 가능한 ‘슈퍼맨’ 같은 배”라고 말했다.

○ 한국 극지연구,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선진국들은 극지가 각종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신천지’라는 점에 주목해 극지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극지 연구에 쇄빙선은 필수품이지만 한국은 남의 나라 배를 빌리거나 얻어 타야 했다. 남극에 기지를 둔 20개국 가운데 쇄빙선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쇄빙선을 빌리려면 하루에 8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고 혹한과 유빙에 견딜 수 있는 내빙선()을 빌리는데도 하루 40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빌릴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다니기 어려웠다. 남극에서 연구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여름인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로 이때는 다른 나라들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쇄빙선은 ‘귀한 몸’이 된다. 정경호 극지연구소 대륙기지사업단장은 “쇄빙선이 있는 미국은 3, 4개월을 항해하면서 연구하는 반면 우리는 길어야 한 달 반 정도 항해할 수 있어 늘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오랫동안 셋방살이를 하다 마침내 내 집을 마련한 느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라온호의 탄생으로 극지 연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벌써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이 공동 연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극지연구소가 올해 개최하는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외국 연구원들도 크게 늘었다. 극지연구소 이지영 홍보팀장은 “심포지엄에 외국 연구원을 초청하려면 체재비 전액을 지원해야 10명 안팎이 참가했는데 올해는 주제가 쇄빙선인 점도 있겠지만 48명이나 신청했다”며 “대부분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해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라온호는 8월 중순 공식 시운전에 들어간다. 10월에는 인도 명명식을 갖고 12월 남극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부산·인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남의 나라 배 빌려탔던 설움 잘 알아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만들것”▼


■ ‘아라온호’ 운항 4인의 각오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국내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에 탄 핵심 승무원들이 한국의 극지연구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익수 선장, 서호선 기관장, 김희수 전기장, 신동섭 전자장. 사진 제공 한진중공업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배에 올라 구조를 익히고 곳곳을 꼼꼼히 살피는 네 명의 사나이가 있다. 국내 첫 쇄빙선인 아라온호 운항을 책임진 김익수 선장(50), 서호선 기관장(49), 김희수 전기장(46), 신동섭 전자장(39)이다.

김 선장과 서 기관장은 승선 경력만 25년이 넘는 베테랑. 김 전기장도 20년 넘게 고압장비를 다뤘다. 신 전자장은 정보기술(IT)업체 연구원 출신으로 선원과 연구원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승선 경험이 없는 신 전자장은 “뱃멀미와 긴 항해에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연과 극지에 관심이 많아 쇄빙선 승무원으로 지원했다. 가족들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호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아라온호에 승선하는 선원 25명 중 선발대로, 나머지 21명은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5월 28일, 선발대 4명은 아라온호에 불이 난 상황에서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오는 곳의 위치를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재빠르게 움직였다. 김 선장은 “선장은 자기가 타는 배를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훤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상과 사무실 벽은 아라온호 도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더구나 아라온호는 연구 장비를 갖춘 특수선이어서 일반 배보다 공부할 항목이 훨씬 많다.

이들은 배의 구조를 익히는 일 외에도 배가 제대로 건조되는지 확인하고 운항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도록 한진중공업에 요청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입주예정자가 아파트를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필요한 사항을 건설사에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당초 설계에는 조타실에 창문이 없었지만 김 선장이 접안, 이안을 할 때 고개를 내밀고 바깥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해 창문이 만들어졌다. 얼음에 배를 고정할 수 있는 ‘아이스앵커’도 이들의 요구로 장착됐다.

지난달 김 선장 등 3명은 노르웨이에서 1주일간, 신 전자장은 프랑스에서 2주일간 각각 교육을 받고 돌아왔다. 아라온호를 최적의 상태에서 운항하기 위한 해외교육이었다. 김 전기장은 “극지연구가 발달한 노르웨이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개설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선장은 “그동안 남의 배를 빌려 타고 눈칫밥 먹으며 지낸 연구원들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연구원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