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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 눈물의 목포 한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항구 도시 목포. 이 땅 변방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은 곳이다. 내게 목포라는 항구는 고모가 흥얼거리던 케케묵은 옛 노래 하나로 다가왔다. 이난영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였다. 그러나 요즘 내가 즐겨듣는 <목포의 눈물>은 이난영의 것이 아니다.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는 한영애가 부르는 것이다. 쉬어빠진 듯한 목소리. 박자는 어찌 그리 건들건들 건너가는지 노래를 듣다보면 나도 따라 건들거리게 된다. 한영애는 옛날 가요가 들려줄 수 있는 청승의 모든 것을 깡그리 보여준다. 사공의 뱃노래가 가물거리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 한영애가 CD 저편에서 먼저 가물거리기 일쑤다. 역시 한영애야. '소리의 마녀'라 할만 하거든. 아직도 뽕짝이 안겨주는 아련한 맛을 떨쳐버리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 때는 슬그머니 인간문화재 이생강이 연주하는 <목포의 눈물>로 바꿔듣기도 한다. 그러나 가물거리면서 가락을 끌고 가긴 그의 대금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뽕짝이 가진 청승이 변하니? 그런데 우리나라 도처에 쌔고 쌘 시인들은 어떻게 목포의 풍경을 노래할까. 1990년에 나온 송기원의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 속에 들어있던 ‘온금동 불빛’이란 시 한 편이 내 기억의 시렁에 걸려 있다. 불빛 아스라한 온금동의 저녁 목포에 가면 온금동이란 동네가 있다. 따뜻할 온자에 비단 금자를 써서 따스한 햇볕비치는 동네라는 뜻을 가졌다. 예전엔 다순그미, 다순금 등이라고 불렸다 한다. 이름이야 ‘버드르르’하지만 실상은 선착장에 맞닿아 있는, 아주 가난한 달동네다. 고하도 빠져 제주도 이어지는 뱃길에 뚝, 뚝, 붓꽃 빛깔로 노을이 떨어져 지나치는 배들도 자위를 끊으면 온금동 산비탈 동네에는 가난한 불빛이 하나 먼저 반짝입니다. 아내는 미술학원 강사로 밤일 나가고 돌맞이 어린 자식 잠든 단칸방 부두 잡역부 일당으로 시집을 산 젊은 문학도는 붓꽃 빛깔 바다가 끝내 눈이 시려워 온금동 달동네에 저 혼자 불빛 되어 반짝입니다. - 송기원 시 '온금동 불빛_김시일에게' 전문 온금동에는 젊은 문학도인 김시일이란 사람이 살고 있다. 앞바다를 떠다니던 배들마저 스스로의 동작(자위)을 멈추고 정박할 만큼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이 동네에서 제일 먼저 불을 켠다. 얼마 되지 않는 잡역부 일당을 쪼개 산 시집을 읽기 위해서다. 고달픈 삶에 물들지 않고 자신이 지닌 순수를 지켜내려는 청년 김시일이야말로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반짝이는 인간 등불인 것이다. 송기원의 시는 온금동이란 달동네가 부둥켜안고 사는 남루한 가난에다 아름다운 무늬를 채색해낸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아련하다.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 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 김선태 시 '조금새끼' 전문 <현대시> 2006년 1월호에 발표된 김선태의 시 '조금새끼' 역시 목포 온금동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은 대부분 고기잡이배를 타는 선원들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사리(조차가 심할 때) 때는 난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고 바닷물이 빠지는 조금(조차가 적을 때)이 되면 잡은 물고기를 싣고서 항구로 들어온다. 선원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그때가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다. 그렇게 뱃속에 들어선 아기들은 열 달 후면 밖으로 나와 고고의 성을 터트린다. 조금 때 가진 새끼들이라 해서'조금 새끼'라 부른다. 그들은 자라서 자신의 아버지처럼 고기잡이 배 선원이 되고, 풍랑과 싸우다가 바다에서 죽는다. 시인은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는 이 '조금새끼'라는 말이 서럽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이여. 미안하다. 나는 그대와 조금 다르게 말해야겠다. '조금새끼'란 말 속에서 난 온금동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조롱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곳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부모 잘못 만난 죄밖에는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죄를 지은 건 국가지 결코 그들이 아니다. 가난을 세습하게 만들고 직업까지 세습하게 만드는 빈곤의 악순환 앞에서 국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가. 다시 시인이여. 그대가 옳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면서 자포자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온금동 사람들이라면 '조금새끼'란 말은 서럽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므로 '조금새끼'야말로 진정한 목포의 눈물이다. 시를 읽는 동안 온금동 '조금새끼'들의 운명이 애잔하게 마음을 적신다. 온금동 바닷가에 가고 싶다. 그 바닷가에 서서 붓꽃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짙은 자주색으로 물드는 노을은 얼마나 황홀할까. 거기 서서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김시일. 그는 지금도 시집을 읽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등불을 켤까. 이제는 시집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까. 그의 근황을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바다라는 두 가지 장애물을 동시에 헤치는 씩씩한 온금동 뱃사내들과 만나서 쓰디 쓴 막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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